사라지는 공간 기록

지도에는 남아 있지만, 사람은 없는 곳

gothis 2026. 1. 26. 02:24

지도에는 남아 있지만, 사람은 없는 곳

"스페인, 아세도 데 라 리에라 마을"이 조용히 사라진 이유

스페인 북서부의 한적한 지방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 보면, 내비게이션은 분명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안내하지만 차를 세우고 내려 주변을 둘러본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지도에는 분명 마을 이름이 표시되어 있는데, 실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감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집은 남아 있고 길도 끊기지 않았지만, 그 공간을 채워야 할 사람의 기척만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지도에는 남아 있지만, 사람은 없는 곳

 

이곳은 **아세도 데 라 리에라(Acebo de la Ribera)**라는 이름의 마을이다. 행정 기록과 지도상에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더 이상 주민이 살지 않는 곳으로 분류된다. 돌로 지은 오래된 주택들이 길을 따라 남아 있고, 작은 교회와 공동 우물의 흔적도 확인할 수 있지만, 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고 창문 너머로는 먼지가 쌓인 가구들만 보일 뿐이다. 마치 누군가 잠시 외출한 사이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잠시’는 이미 수십 년이 지나 있다.

 

아세도 데 라 리에라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마을 소멸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곳이 비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는 전쟁도 없었고, 대형 자연재해도 없었으며, 정부가 강제로 주민들을 이주시킨 기록도 없다. 어느 날 갑자기 폐쇄되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단지 조금씩, 그리고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이에 이곳을 떠났고, 그 결과 마을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원래 이 마을은 스페인 북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농업과 가축 사육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마을 중심에는 작은 교회와 공동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침이면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불이 켜지던 풍경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이들은 몇 킬로미터 떨어진 학교까지 함께 걸어 다녔고, 어른들은 서로의 사정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만큼 가까운 관계 속에서 일상을 이어갔다.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먼저 젊은 세대가 마을을 떠났다. 더 많은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찾아 도시로 이동했고, 처음에는 “도시에서 조금만 살다가 돌아오겠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그러나 도시에서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리면서, 그 선택은 점점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굳어졌다.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마을의 평균 연령은 빠르게 높아졌고, 아이들 웃음소리는 점점 들리지 않게 되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학교와 교통 문제였다. 아이 수가 줄어들자 통학 버스 노선이 축소되었고, 결국 유지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학교와의 연결이 끊긴 마을은 더 이상 새로운 가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 병원, 상점, 우편 서비스 같은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도 하나둘 사라지면서, 남아 있던 주민들조차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 고령의 주민들까지 자녀가 있는 도시로 옮겨가면서, 마을은 사실상 기능을 잃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마을은 이제 끝났다”라고 선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 주민이 언제 떠났는지, 그날 마을에 어떤 풍경이 있었는지를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래서 아세도 데 라 리에라는 공식적으로 ‘폐쇄된 마을’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살지 않게 된 마을로 남아 있다. 조용히 사라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쉽게 잊힌 셈이다.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은 건물과 생활의 흔적들이다. 집 안에는 오래된 가구와 생활 도구가 그대로 남아 있고, 벽에는 수십 년 전 날짜에서 멈춘 달력이 걸려 있다. 관리되지 않은 정원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비와 바람이 오랜 시간 드나들며 건물은 서서히 낡아간다. 누군가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다림은 끝이 없는 상태다.

 

아세도 데 라 리에라는 재개발 대상도, 관광지로 적극 활용되는 곳도 아니다. 그래서 더 빠르게 자연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을은 결코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스페인뿐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마을들이 같은 과정을 겪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특별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을이 사라진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마을들이 진짜로 사라지는 순간은 건물이 무너질 때가 아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지고, 기록이 남지 않으며, 누군가의 삶이 이어졌다는 사실조차 기억되지 않는 순간, 그 마을은 완전히 사라진다. 아세도 데 라 리에라의 기록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비슷한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