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끊겼고,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전남, 영광 송이도"에 남겨진 집들과 시간의 흔적
전라남도 영광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송이도에 들어가려면 하루에 몇 차례밖에 없는 배 시간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막상 섬에 도착해 마을 쪽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순간에 걸음을 멈춘다. 분명 집들이 늘어서 있고 담장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나올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문들은 오래전부터 열리지 않은 상태다.

이곳은 **송이도**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아직도 ‘사람이 사는 섬’에 속하지만, 실제 풍경은 그렇지 않다. 골목은 조용하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생활의 움직임이 아니라 시간이 멈춘 흔적들이다. 송이도는 어느 날 갑자기 비워진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천천히 비워졌기 때문에, 언제부터 사람이 떠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말하기조차 어려운 곳이다.
송이도는 원래 서해안 어업과 섬 생활이 유지되던 전형적인 유인도였다. 섬 주민들은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갔고, 아이들은 많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작은 학교와 마을 공동체가 있었고, 섬이라는 조건 속에서도 일상은 이어지고 있었다. 육지보다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그것이 곧 ‘떠나야 할 이유’는 아니었던 시절이다.
변화는 눈에 띄지 않게 시작됐다. 먼저 젊은 사람들이 섬을 떠났다. 고등학교 진학과 취업을 위해 육지로 나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늘어났다. 섬에서의 삶은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의료·교육·교통 같은 기본적인 생활 조건은 육지와 비교할수록 불리해졌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보였던 이동이, 시간이 지나면서 섬 전체의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문제는 교통이었다. 배편은 줄어들었고, 기상 상황에 따라 운항이 불규칙해졌다. 섬에 남아 있는 주민들에게 이동은 점점 큰 부담이 되었다. 병원을 가기 위해 하루를 비워야 했고, 긴급 상황에서도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웠다. 이런 조건 속에서 고령의 주민들조차 육지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고, 그 과정은 강제 이주가 아니라 ‘생활을 위한 선택’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송이도는 행정적으로는 유지되었지만, 생활 공간으로서의 기능은 점점 약해졌다. 학교는 더 이상 운영되지 않았고, 공동체를 묶어주던 행사와 일상도 줄어들었다. 누군가 마지막으로 섬을 떠난 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이곳에는 집은 남아 있지만 사람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지금 송이도에 남아 있는 집들은 무너진 폐허와는 다르다. 지붕은 여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방 안에는 가구와 생활 도구가 남아 있는 곳도 많다. 이는 이곳이 갑작스러운 재난이나 사고로 비워진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서둘러 도망치듯 떠난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품은 채 섬을 떠났다. 그러나 그 ‘언젠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송이도의 풍경이 주는 인상은 단순한 적막이 아니다. 완전히 폐쇄된 공간이라기보다는, 시간이 멈춘 채 대기 상태에 놓인 장소에 가깝다. 집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지만, 그 안을 채워야 할 삶은 빠져나간 상태다. 그래서 이곳을 걷다 보면, 사라진 것은 건물이 아니라 ‘일상’이라는 사실이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이 섬의 이야기는 송이도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서해와 남해, 동해를 따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교통이 불편해지고, 생활 인프라가 유지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은 소리 없이 진행되며,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송이도는 그래서 특별한 사례라기보다,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공간 변화의 한 단면에 가깝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지역 간 격차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바로 이런 작은 섬들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지금은 조용한 공간으로 남아 있지만, 비슷한 조건의 다른 지역들도 같은 길을 걷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 섬을 기록하는 이유는, 단순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송이도에 남아 있는 집들과 길, 그리고 멈춰 선 시간은 우리가 어떤 조건에서 공간을 포기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공간은 한동안 남아 있지만, 그 안의 삶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이곳은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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